
잠깐, 꽤 오래 전의 영화 한 편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도둑질이나 하면서 껄렁껄렁하게 사는 ‘미셸’이란 남자가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훔친 차를 몰고서 도주하다가, 마침 차 안에 있던 권총으로 의도치 않게 경찰을 죽이고선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와중 만나게 된 미국인 유학생 ‘패트리샤’와 눈이 맞고(?) 패트리샤는 미셸의 아이까지 임신을 한다. 그러나 이 불안한 현실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 둘은 헤어지고 미셸은 계속 경찰의 추적으로부터 도망을 치지만 길거리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쓰러지고 만다. 거의 숨이 넘어가게 생긴 미셸에게 패트리샤가 달려오지만 미셸은 “역겨워…”라는 말을 한 뒤,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감게 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아는 사람은 다들 아는 <네 멋대로 해라>(원제는 A bout de soufflé. ‘마지막 숨’ 정도의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국내 개봉 제목은 일본 개봉 제목을 그대로 들여왔다) 이야기다. 1960년에 개봉했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62년 전의 작품인데, 당시만 해도 엄청난 센세이션 그 자체였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은 점프컷(쇼트와 쇼트의 스무스한 이음매 없이 편집을 하는 방식)이나 핸드헬드 촬영(카메라를 직접 어깨에 메고 촬영하는 방식) 등이 모두 <네 멋대로 해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부분도 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의 감독이 이전까진 영화를 연출해본 적이 없는 새파란 ‘글쟁이’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장 뤽 고다르.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평론을 기고하던 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서 말 그대로 ‘거리로 나가’ 만든 첫 작품이자 이제는 영화 역사에 고전 중의 고전으로 남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본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고다르 감독이 9월13일 생을 마감했다. 향년 91세. 보통 유명인이 사망을 한 경우 얼마 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경우처럼 ‘서거’나 ‘타계’ 등의 표현을 쓰는데 고다르 감독에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 것은, 그가 마치 62년 전 <네 멋대로 해라> 속 미셸처럼 정말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여러 질환을 갖고 있었는데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방식으로 숨을 거둔”(고다르 감독의 법률고문이 전함) 것.
그가 말년에 거주하던 스위스에서 스스로 마지막 길을 갈 때 옆에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고 한다. 덧붙이면 앞서 이야기한 ‘조력자살’은 의료진이 처방을 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복용하거나 투약해 죽음에 이르는 방식으로, 환자(혹은 가족)의 요청으로 의료진이 약물을 주입해 대상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나 존엄사와는 다르다. 아무튼 조력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가 합법인 유일한 유럽 내의 국가가 스위스이고, 안락사나 존엄사는 고다르 감독의 고향인 프랑스나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도 일부 국가에서만 특정한 조건 하에 허용되는 경우.
고다르 감독은 그의 대표작인 <네 멋대로 해라>는 물론이고, <미치광이 피에로> 같은 작품도 보면 꼭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걸 알 수가 있다. 개인의 성격 탓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가 영화를 생각하며 걸어간 길은 이전에 누구도 간 적이 없는 길이었고, 뒤를 이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숱하게 많은 창작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부터가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유럽 영화에 진저리를 친 고다르 감독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였던 1920~30년대에 흥했던 미국산 B급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이란 걸 생각하니… 세상사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네 멋대로 해라>에서 미셸이 내내 쓰고 나오는 중절모가 험프리 보가트로부터 빌려온 것이라는 건,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
전 세계의 많은 전/현직 영화감독은 물론이고, 배우, 제작자, 그리고 나아가서는 대중문화 창작자들에게 무수한 영감의 원천이 된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이었던 미셸 역의 장 폴 벨몽도는 바로 작년에 숨을 거두었다. 매우 불우한 삶을 살다 간 걸로도 유명한 패트리샤 역의 진 세버그는 너무 이른 나이였던(40세) 1979년에 사망을 했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 감독은 2022년에 생을 마감했다. 이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