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은행강도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며칠 전, 모처럼 은행 지점을 찾을 일이 있었다. 요즘 어지간한 은행 업무는 PC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거의 다 할 수 있긴 한데 또 가끔은 이렇게 꼭 지점을 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런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은행 지점을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객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

점심시간에 딱 걸려서 창구는 한산했고, 번호표를 뽑고서 한참 기다리다(사실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리진 않았는데, 은행이나 병원이나 공공기관 같은 데서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하기 짝이 없기에 실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 결국 일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해본 생각.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가끔 보는, 권총이나 군용 소총으로 무장한 강도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은행을 털고서 밖에 대기시켜놓은 자동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바로 이런 은행강도 행각이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김PD는 곧바로 생각했다. 한국에서 은행강도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결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를 할 수 있다.

이런 광경, 한국에선 구경할 수가 없다. 아, 물론 미국에서도 흔하게 보는 광경은 아닐 것이다

첫 번째. 총을 구할 수가 없다.

총이란,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는 물론이고 비교적 먼 거리에서도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이다. 그리고 총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실제 사용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는 것. 군용 소총이라면 남성의 경우 대한민국 시민 대부분은 쉽게 사용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구할 수가 없다는 것.

그런데 한국에서 총기를 사용한 은행강도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긴 하다. 지난 2002년 3월, 서울의 한 은행에서 K2 소총 두 정으로 무장한 3인조 강도가 은행에 침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만 실제 금고를 여는 데는 실패했고 직원과 은행 고객 일부의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데 그쳤다.

이 강도는 경찰의 수색과 추격 끝에 금방 검거되었다. 참고로 이들이 갖고 있던 K2 소총은 실제 총기였고, 은행을 털기 위해 진작 군부대에서 탈취했고 그 과정에서 실탄도 탈취했으나 강도 행각 중에 실탄을 발사하진 않았다.

2002년, K2 소총으로 무장했던 강도들은 금방 검거

두 번째. 대한민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좁다.

게다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 대부분이 너무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범죄자가 장기간 도주를 벌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은행강도 씩이나 했으면, 그리고 만약 강도질에 성공했으면 현금을 제법 많이 갖고 있을 텐데 그것만 갖고서도 도주에 충분하진 않은 것.

마지막 세 번째.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은행강도가 성공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 텐데, 요즘은 대부분 은행들이 현금을 보관하는 금고(를 포함한 지점) 자체를 건물 2층이나 혹은 3층 이상에 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은행강도 행각에서 이것은 치명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요즘 시중의 대부분 은행들은 건물 1층엔 ATM기를 두고서 고객과 직접 접점을 갖는 지점은 2층에 두는데(며칠 전 내가 갔던 은행 지점도 역시 2층이었다) 이는 사실상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뱅킹, 그리고 스마트폰 뱅킹 등이 비율이 엄청 늘어나면서 지점 자체의 수도 줄고 있는 것.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전국의 은행 지점 수는 현상유지 수준이었는데 첨부한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그 수가 크게 줄고 있다. 역시 고객들의 금융 상품 소비 행태가 변화하기도 했고 임대료 상승 또한 이런 추세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실제로 전국 대부분의 도시 지역 기준으로 임대료는 1층이 가장 비싸고 한 층씩 올라가면서 절반에서 30~40%씩 깎인다고 보면 된다).

덧붙여서 대한민국 금융권에선 지난 달 다소 특이한(?)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4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엔 바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한 지붕 두 가족’, 즉 공동지점을 내기로 한 것. 대한민국 금융권 중 은행 한정으로 공동지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 공동지점 또한, 당연히(?) 2층에 위치하고 있다. ^^;; 아, 1층엔 ATM 기기가 배치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창설 계기가 되었던 전설적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그의 생애는 지난 2009년 ‘퍼블릭 에너미’란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가 벌인 것과 같은 강도질은 대한민국에선 꿈도 꾸기가 힘들다는 얘기. 혹시나 은행강도를 꿈꾸는(?) 이가 있다면 꿈 깨고 침 닦으란 얘기도 하고 싶다.

마이클 만 감독, 조니 뎁/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퍼블릭 에너미’. 영화는 볼만하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