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민들의 건투를 빈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일단의 군인들이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작당모의를 하고 결국 쿠데타를 벌이면서 한 말은 ‘구국의 결단’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 들을 때마다 참 느끼한 생각이 드는 건,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상황 때문에)내가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란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데타의 주역, 시니어 박통은 이른바 혁명일성을 통해 사회 혼란이 일소된 이후 본인은 군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의 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고.

요즘은 그래도 좀 덜한 듯하지만, 예전엔 정치인들이 무슨 건수만 있다 하면 ‘구국의 결단’이란 말을 참 많이도 했다. 나라를 위해서라고, 혼란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서라고,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들 하면서 결과적으론 자기 잇속만 챙기는 꼬락서니를 하루 이틀 본 게 아닌데도, 많은 이들이 저런 말을 했다.

이젠 초중고 교과서에도 멀쩡히 ‘5.16 군사정변’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쿠데타를 여전히 인정하지도 못하고 일부러 언급을 회피하면서 짐짓 모른 체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네들이 살고 있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냐고. 도대체 어떤 나라길래 군인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저지른 행위를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1960년 5월16일, 지금으로부터 딱 62년 전

사실 요즘은 구국의 결단이란 말 자체가 거의 조롱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 말을 직접 입에 담는 사람도 촌스럽다는 걸 알지 않을까 싶다. 오랜 기간 활동을 쉬고 있는 델리스파이스가 거의 20년 전에 내놓은 곡 ‘노인구국결사대’를 다시 들어보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비아냥조의 톤은 여전히 ‘썩소’를 짓게 만든다.

그런데 시니어 박통을 여전히 ‘추앙’하고,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는 이들이 전부 늙수구레한 노인들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수천 년 전 공자는 학문에 뜻을 세울 때라고 해서 ‘지우학(志于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준말 아니다)이라고 부른 나이를 갓 넘긴 이들조차 바로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솔직히 이제 대통령의 자리에 ‘공식적으로’ 오른 이의 지난 선거 캠페인 자체에 배제와 혐오, 차별과 기득권 유지라는 가치를 숨기지도 않고 드러냈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결국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걸 보면 안타깝긴 하지만 의아해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로남불과 적반하장으로 점철된 차기 국무위원들의 인사청문회는 또 어땠고. 4천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들의 지지 중에 불과 0.7%가 앞섰을 뿐이란 사실로부터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교훈도, 두려움도 없이 행동하는 이들을 우린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

60여 년 전에 한 군인이 내린 ‘구국의 결단’으로 실제 우리네 삶이 큰 영향을 받았듯이, 정치는 언제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지금의 세상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면, 그저 열심히 견딜 일이다. 기어코 살아남을 일이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건투를 빈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열심히 살아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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