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대전제부터 시작하자: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세력과 세력, 그 어떤 집단 사이에서도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여성 등 어느 모로 보나 약자들이란 것. 가장 소리 높여 전쟁을 외치고 급기야 전쟁의 명령까지 내리는 이들 중 대다수는 막상 전쟁의 참상을 직접 마주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이란 것.
전쟁은 그렇게 무섭고도 끔찍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겠지만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문화 콘텐츠에서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전쟁 그 자체는 갈등 구조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 기원전의 이야기인 <뤼시스트라테>부터 시작해서 가깝게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르기까지, 돌이켜보면 우리가 사랑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전쟁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최근에 와서야 개발이 되었고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확보한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도 전쟁을 어떤 식으로든 다루고 있기는 하다. 다만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갖는 특성 때문에 획일적인 입장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전쟁에 대해 나름 다양한 시각을, 자세히 말하자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시도가 게임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고 많은 게임 이용자들이 이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게임, <This War of Mine(이하 디스 워 오브 마인)>도 있다.
만약 게임이란 미디어에 그다지 익숙하지도 않고, 게임 플레이를 위한 사전 가이드 같은 것도 챙기지 않은 이라면 이 게임을 보고는 매우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은 내가 전쟁에 직접 나서서 화끈하게 적군을 소탕하는 식의 플레이는 전혀 제공을 하지 않기 때문. <디스 워 오브 마인>에서 게임 이용자는 그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일개 시민이 되어 이 전쟁의 와중에 그저 살아남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역시 또 나약하기 짝이 없는 다른 시민(물론 육체적으로 완강한 캐릭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다른 스펙의 수준이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어 밸런스를 보장한다)들과 협력을 하든, 이용(?)을 하든, 아니면 뒤통수를 쳐서 약탈(!)을 하든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게임의 공간적 배경은 동부 유럽 어딘가에 위치한(참고로 게임의 개발사는 폴란드의 11비트 스튜디오) 가상의 국가 그라츠나비아이고, 어떤 나라(혹은 민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인지 명확하게 나오진 않는다. 일단 장르상으론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구분할 수 있고 굳이 서브 카테고리까지 언급을 하자면 서바이벌 시뮬레이션, 그리고 사망한 캐릭터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점에선 <디아블로> 시리즈와 비슷한 로그라이크 장르의 요소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첨부한 스크린샷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게임의 비주얼은 전체적으론 살풍경한 무채색 톤. 그리고 게임의 목표가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 일개 시민으로 생존하기’인 만큼 너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막상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난이도가 그렇게까지 높다고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물론 초반 두어 번의 시도에서 안식처가 약탈을 당하고, 내 캐릭터가 신경쇠약과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광경을 보다 보면 화딱지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 고비만 넘겨 또 새로 시도를 하게 되면 요령이 어느 정도 생길 것이다. 나중엔 아예 ‘학살자 모드’로 돌변하여 중무장한 시민과 군인들이 우글우글한 곳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일까지 발생할 수도.

아주 예전, 그러니까 거의 공개와 동시에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는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굳이 한 것은, 당연하지만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라기보단 일방적인 침공이지만)에 대한 경각심을 나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그 어떤 이유가 그리도 숭고하길래 사랑하는 가족을 끔찍한 사지로 내몰 수밖에 없게 만드는가?
그 어떤 이유가 그리도 거창하길래 아이들이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가?
그 어떤 이유가 그리도 필요하길래 경제 제재로 인한 피해를 시민들이 고스란히 받도록 만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답을,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은 준비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지금, 전 세계의 수많은 정의로운 시민들이 목도하면서 만들어가는 오늘의 역사가 던지는 질문이다.
다시 처음의 대전제로 돌아가보자: 전쟁은 이 땅에선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바로 그 점을 고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