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나잇 인 소호, 이렇게 돋보이는 영화라니

은근히 많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마이너한 장르라는 인식이 있는 호러는, 따지고 보면 영화가 발명된 거의 초창기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95년 최초의 영화 ‘공장 노동자들의 출근’으로부터 약 20여 년이 흐른 1920년대를 전후로 해서 태동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로베르트 비네, 프리츠 랑,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같은 연출가들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을 통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을 겪은 독일의 무력감을 선보였다.

1930년대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초기 전성기 시절 빛을 본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등의 작품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타자에 대한 불안감이 극대화된 채로 SF와 결합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오컬트, 좀비, 슬래셔 등 다양한 서브 장르로 변화하며 진화하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여기까지는 미국 내에서의 호러 장르 변천사라고 할 수 있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호러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왔을까?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도 호러는 태생적으로 진지한 예술적 가치의 탐구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알로(Giallo)’라는 서브 장르가 탄생했는데, 주로 무지막지한 살인마들이 여성인 희생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슬래셔와 비슷하다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다. 참고로 ‘지알로’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의미하는데 예전 이탈리아에서 많이 출판된 페이퍼백/B급 소설들의 표지가 주로 노란색이었던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바로 그런 이탈리아산 지알로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나름 모던한 감각과 화려한 비주얼과 재기발랄한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매력이 한 데 만난 작품이 바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이렇게만 들으면 엄청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는데, 솔직히 그렇진 않고 ^^;; 소소하니 재미있는 구석이 제법 있지만 전체적으론 조금 아쉬운 느낌이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런던의 한 패션학교에 막 입학한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기숙사를 나와 하숙집을 얻는데, 첫 날 밤 꿈에서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가수를 만나게 된다. 갑자기 5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샌디와 소호 거리의, 정말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면면을 만나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엘리. 급기야 꿈과 현실을 혼동하기에 되는 와중 꿈속에서(아니면 현실에서?) 샌디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는 모습을 엘리가 보게 되고…

자세한 내용을 전부 이야기할 수는 없고. ‘라스트 나잇 인 소호’에 대해 장점으로 꼽을 만한 부분을 언급하면 우선 화려한 비주얼을 들 수 있다. ‘올드보이’와 ‘아가씨’ 등을 작업했고 이후 할리우드에 진출한 정정훈 촬영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비주얼은 1960년대를 수놓았던 페츄라 클락, 더스티 스프링필드, 서쳐스 등의 OST 넘버와 함께 유려함의 극을 보여준다. 특히 샌디의 다양한 패션도 빼놓으면 안 되는 부분.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바, 배우들의 매력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엘리 역 토마신 맥켄지는 청순하면서도 조금 맹~한 듯하지만 그래도 나름 강단이 있고 샌디를 어려움에서 구해주고자 애쓰는, 착한 시골 출신 아가씨 역에 썩 잘 어울린다.

배역에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샌디 역 안야 테일러 조이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명실상부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배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안야 테일러 조이는 1960년대 화려한 소호 거리를 그냥 런웨이로 바꿔버리는 모습이다. 사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처음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쓸 땐 안야 테일러 조이를 엘리 역으로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작이 지연되는 얼마간 안야 테일러 조이의 이미지가 매우 큰 폭으로 바뀌는 바람에 ‘샌디 역이 더 잘 어울리게 되어 다행’(에드가 라이트 감독 왈)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럼,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일단 후반부 들어 분위기가 너무 급변하는 느낌이다. 즉 호러 장르에 나름 충실하고자 한 건 알겠는데, 관객에게 제공하는 건 당혹감 정도 말곤 없다는 느낌? 그리고 굳이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반전의 요소와, (스포일러가 되니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지만)그 오랜 시간 동안…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 등등이 이어진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제각각 너무나도 명확해 보이는 묘한 작품. 한 가지만 덧붙이면, 그 무엇보다 최근에 개봉한 다른 그 어떤 영화들과 비교해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돋보인다’는 점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는 작품이 바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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