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끌끌 차면서 ‘요즘 젊은/어린 것들은 말이지’라며 이야기를 시작한 적이 있는, (나를 포함한)모든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 적잖은 놀라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로 해서 벌어졌다.
서울 은평 지역의 중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며, 심지어 오프라인 신문(타블로이드판)의 인쇄와 배포까지 맡아 발행되는 신문이 있다. 이름은 ‘토끼풀’. 이제 중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겠냐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지어다. 작년에 첫 발을 뗀 토끼풀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특히 ‘청소년’의 시각에서 본 세상사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밝혀왔다. 그 과정에서 (도대체 섭외는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한데)독일 녹색당의 청년 국회의원이나 네팔 반정부 시위를 이끈 젊은 활동가, 노조위원장 등과 인터뷰를 따내는 등의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심지어 작년의 불법 계엄 사태 때는 이를 비판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을 정도.
그런 토끼풀이 탄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8월, 서울 은평구의 신도중학교에선 기 배포된 15호 신문 1백 부가 학교측으로부터 배포 금지 조치를 당해 전량 수거되었다고. 이에 대해 토끼풀이 학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학교의 배포 금지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학교측은 교육의 중립성과 학부모들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민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솔직히 옹색한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토끼풀은 위의 사태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오프라인판 17호 1면을 ‘백지’로 채웠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볼 법한 모습이 2025년에 다시 재현된 것.
상황은 더 커졌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는 직권 조사에 착수했고, 인권 및 청소년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민주당과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 정치권에서도 논평을 내놓으며 이슈가 확산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에 문제의 발단이 된 신도중학교에선 교장이 일단의 토끼풀 멤버들을 불러 사과를 했다고. 그 내용이란, 교장 본인이 “신문의 배포 금지나 압수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역시 옹색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지만.

현재 대한민국 헌법에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 국민에는, 당연히 중학생도 포함되어 있고. 내가 그 나이 때는 뭘 했는지 돌이켜보면 시험 앞두고 컨닝페이퍼를 만들거나 동네 오락실을 기웃거렸던 기억 말곤 딱히 없지만(…)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들 중 상당수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대학생 형 누나들 못지 않게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짖었던 이들 중 상당수도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학생들이 단체로 특정한 입장을 내세우고자 할 때 학교측이 부담을 느끼고(혹은 지레 겁을 먹고) 무조건 틀어막으려 했던 일은,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학창시절 기억에도 한두 건 남아있을 듯. 그리고 유독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민주적 절차나 자율적 사고와는 거리가 무척이나 먼 것도 사실 아닌가? 예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참 많이 변한 것 같아도 찬찬히 살펴보면 또 수십 년 전에 비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도 않은 곳이 바로 학교이기도 하고.
그래도 아주 솔직히, 학교측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또 아니다. 특히 이번 이슈처럼 학교 외부에서 비롯된 일(토끼풀은 은평 지역에 위치한 4개 학교에 재학 중인 중학생 30여 명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로 인해 만약 교장이나 교감, 일선 교사까지도 커리어에 오점이 남게 된다면 돌이키기 힘든 결과로 이어질 테고.
그럼에도 나는 토끼풀을 지지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겠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건강한 시각을 갖고서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해야 그들의 말마따나 “청소년은 민주주의가 사라진 나라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작년 불법계엄 사태 직후 토끼풀이 발행한 호외의 헤드라인)는 말이 정당성을 얻을 것 아닌가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