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가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것

초대박 스포일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는 사망했고,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노인이 되어 은퇴를 했으며, ‘스칼렛 위치’ 완다 막시모프는 사실상 정신착란에 빠졌다.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들이,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MCU가 가장 큰 인기를 모았던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수많은 팬들까지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을, 디즈니는 어떻게 타개하기로 했을까?

앞서 보리스 매거진에서는 ‘어벤져스들이 다시 어셈블을 할 수 없는 어른의 사정(링크)’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즉 너무나 큰 폭으로 인상해버린 제작비와 배우들의 몸값, 여기에 관객들의 피로감 등이 겹치면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면서 더 새로워진 판을 짤 타이밍이 된 것. 그렇게 해서 초대 어벤져스 멤버들이 모두 활약을 한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 이후의 첫 작품(사실 영화 쪽으론 블랙 위도우의 단독 주연 작품이 있긴 했지만 캐릭터의 사망으로 더 이상 출연은 없을 것이기에)에선 MCU 사상 최초의 동양인 히어로, 샹치가 주인공이 되어 근사한 액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분명 MCU에 속한 작품이면서도 이전까지의 그 어떤 MCU 작품과도 다른, ‘이터널스’가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선 팬데믹 기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크게 흥행 성적을 내고 있는 중(원고 작성일 기준으로 200만 관객 달성). 특히 이번 작품에선 (원래는 미국인이지만 사실상 한국인…이란 게 무슨 말이지? 암튼)마동석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고.

사실 ‘이터널스’에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동양인 외에도 매우 다양한 캐릭터들이 거의 신적인 능력을 가진 초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각장애인, 동성애자, (설정상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는)틴에이저 등은 확실히 이전까지라면 슈퍼히어로 캐릭터론 상상하기 힘들었던 경우이긴 하다. 게다가 동성애자의 키스씬이 들어갈 예정이란 점 또한 진작부터 알려지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더더욱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 이 부분에 대해 첨언하면, 사실 그 키스씬은 그저 순식간에 지나갈 뿐 특별한 감흥 같은 건 없다. 그것보단 오히려 초반에 나오는 이성 캐릭터간의 베드씬(!)이 의외로 길기도 하고 수위도 12세 관람가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모습이란 점이 이채롭다. 심지어 이 베드씬은 야외에서 펼쳐진다!

MCU 사상 초유의(!) 베드씬을 펼치는 두 캐릭터… ㄷㄷㄷ

제작사인 디즈니가 ‘이터널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확실히 이전까지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무척이나 다른 이 작품은 세계관부터가 다문화와 다인종을 표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다. 물론 원작(코믹스)이 따로 있는 작품이고 그런 원작을 선택해서 결국 영화화까지 이른 것 자체가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긴 하지만, 이젠 이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비전을 보여줄 때라고 디즈니와 총괄 제작자인 케빈 파이기가 판단한 것일 터다.

일부에선 이에 대해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이터널스’의 캐릭터들은 원작과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 마카리의 경우 영화에선 여성 청각장애인으로 그려지지만 원작에선 멀쩡한(?) 백인 남성. 그 외에도 마동석이 분한 길가메시나 킨고, 파스토스 같은 캐릭터들 대부분이 원작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파스토스가 동성 애인과 키스를 나누는 장면 같은 건 원작엔 전혀 없다.

PC 성향이란 것 자체가 세계 각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매사 불편함을 강요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져 영 못마땅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어쨌든 제작사인 디즈니로선 나름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고, 여기에 대해 호불호의 감상을 갖는 것 또한 개인의 선택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터널스’가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개인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권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인 이터널스들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와 이로 인한 고뇌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영화 자체에 대해선 관람객 사이에 평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중.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10명이나 나오면서 제각각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능력을 흥미롭게 배치했고, 그런 구성이 액션을 통해 잘 드러났다는 점과 아름다운 자연 배경(+ 영상미) 등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관객들이 있는가 하면, 드라마가 길고 지루하며 MCU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빌런이 없고 결정적으로 이전까지의 MCU와 비교하면 너무 동떨어진 작품이라는 점 등에 대해 박하게 평하는 관객들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개인의 선택. 영화 속에서 신적인 존재들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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