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의 어느 날.
며칠 전 내린, 발목이 빠질 만큼 쌓인 눈은 희한할 정도로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거의 녹아 내렸는데 또 며칠 사이 희한할 정도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따스한 아랫목이 그리워진, 어느 날 밤.
대부분의 대한민국 시민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
지금 대한민국이 그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인가? 맞다.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가? 그것도 맞다.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난입하여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몸으로 막기 위해 새벽같이 수천 명의 시민들이 여의도로 몰려갈 만큼 처절한 상황인가? 당연히 맞다.
그런데, 지금의 그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한 자가 바로 현직 대통령이란 점이 더욱 놀라운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은근히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계엄을 때려버린 박정희 때문에(혹은, 덕분에?) 계엄령은 대통령이 그냥 혼자서 선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게 그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삼권분립의 개념이 왜 생겼겠는가. 바로 입법부인 국회의 의결과 동의를 거쳐야만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는 것이 계엄령이다.
이번 윤석열의 계엄(이라고 쓰고 친위쿠데타라고 읽는) 사태의 진행상황을 보자. 언필칭 ‘범죄자 소굴이 된 국회의 입법 농단 때문에’ 구국의 의지로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국무회의는 물론 국회의 의결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의원들의 이어질 액션을 물리적으로 막기 위해 동원한 것이 분명한 계엄군이 현장에서 다소 어물쩡거리는 중 국회에선 계엄 무효의 의결이 이뤄졌고 계엄군은 철수를 했다. 이어진 대통령의 담화는 기괴하기까지 했다. 국회를 존중해서 계엄을 해제하겠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그 생난리를 피운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처럼 이어지는,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감명을 받아(?) 저렇게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전두광처럼 1차에 안 되면 2차, 3차까지 마땅히 밀어붙여야 할 것 아닌가? 간만 봤다가 발 뺄 거면 이처럼 모양 빠지는 꼴이 또 이디 있는가 이 말이다. 만약 이번처럼 계엄군을 비롯한 ‘현장 실행 인력’들이 생각만큼 기민하게 움직여주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에 대비한 2차, 3차 플랜은 또 어디 있는 건가(아니, 있기는 했나) 이 말이다.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울 머리도 없고, 일을 끝까지 추진할 배짱도 없고.
그것도 그렇고, 도대체 이번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대통령 스스로가 밝힌 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내용이고, 개인적인 생각으론 최근 들어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대통령에 관한 부정적인 루머가 꽤 크게 작용한 것 아닐까 한다.
그 루머란 크게 두 가지. 일단 하나는 현재 대통령 주변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당사자에게 정확히 전달할 만한 인물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는 걸 무척 싫어한다는 대통령의 품성을 볼 수 있는 일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진짜 ‘나사가 여러 개 빠진’ 노인네들이나 보는 정치(라고 말하기에도 무안한, 그냥 극우파들의) 유튜브 채널을 탐독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윤석열은 하필이면 검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란 사실까지 대입되면 그나마 어렵지 않게 수긍하게 된다(?). 평생 동안 타인을(범죄자인가 아닌가) 의심하고, 경우에 따라선 윽박지르거나 위협하며, 상명하복의 문화에 온몸의 세포가 절여질 대로 절여진 사람이 바로 누구던가. 그런 사람일지 몰랐다고? 천만에, 이미 많은 유권자들은 그가 그 따위 인간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그를 ‘찍었다’.
새벽에 인터넷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본 인상적인 댓글들이 많았다. 그 중엔 정말 기상천외하게 웃기는 댓글도 있었고. 역시나 해학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문화가 DNA 단위에 새겨진 민족인 것인가. 아무튼 그런 댓글 중 하나는 ‘이제 대한민국에 생존해 있는 모든 세대가 계엄을 한 번 이상 경험했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하나 더 보태보자. ‘이제 대한민국에 생존해 있는 모든 세대는 대통령 탄핵을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될 것이다’.
추신: 이번 계엄/친위쿠데타 사태가 새드 엔딩이 되지 않은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통령과 내란 모의 세력의 능력 부족 탓이기도 했지만 계엄 자체를 무효로 돌리는 데에 크게 일조한 국회와 함께, 무엇보다 평일 새벽 시간에 지체 없이 여의도로 달려가 물리력을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힘이 컸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도 한 몫을 담당했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다.

2024년 12월, 서울의 겨울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