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국영화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다소 특별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튜버들. 실제로 한국영화 속 유튜버들은 딱히 장르도 가리지 않고 나오고, 각자의 주력 분야도 매우 다양하게 묘사된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인구 대비 유튜버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유튜브 통계 분석업체 ‘플레이보드’ 집계, 2020년). 그리고 유튜버들이 본인의 채널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경우도 다른 나라 대비 상대적으로 많은 편. 그렇게 많은 초등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유튜버를 꼽는 일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지.
꼭 나이가 젊거나 어리지 않더라도, 대다수 현대인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보고 또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내며 잠자리에 들면서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러니 <베테랑 2>(류승완 감독 / 황정민, 정해인 등)에서 박선우(정해인)가 스마트폰을 흔들면서 “요즘 사람들은 여기(스마트폰)에 머릿속이 다 들어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
그런 유튜버들은, 그리고 그들이 재구성한 가상현실에 맹목적으로 빠진 많은 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의 시각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의(正義)란 무엇일까? 그렇게 많은 한국영화에 나온 유튜버들이, 거의 대부분 나사가 하나씩은 빠진 모습으로 그려진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런 데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현재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고 하면, 역시 그렇게 많은 한국영화 속 ‘얼빠진’ 유튜버들이 하나같이 사적 제재를 목놓아 부르짖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오늘 리뷰를 하는 영화 <베테랑 2>에도 대사로 직접 언급되듯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그토록 심하기 때문”에.

벌써 9년이나 된(!) <베테랑> 1편은, 광역수사대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안하무인에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와 맞서 결국 어렵사리 승리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앞뒤 재지 않고 일직선으로 내달렸던 이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경찰이자 소시민이 거둔 판정승은 통렬한 재미를 주었고, 아주 적당한 선에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고발도 꼼꼼하게 담겼다. 간단히 말해서 아주 성공적인 오락영화였고, 이에 1천3백만이 넘는 관객이 화답했던 것.
밝고 경쾌한 분위기였던 1편과 달리 9년의 시간이 흘러 관객을 찾은 속편은 다소 무거워졌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름 심각한 질문도 던진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정의란, 유구한 인류 역사의 그 어느 타임라인에도 모두 용인되는 정의가 아니다. 어쩌면 ‘서기 2024년, 대한민국 사회’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정의일 터다.
그러니 박선우는, 자신이 벌이는 잇단 행각이 ‘범죄’가 결코 아니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그는 현직 경찰이다). 유튜버들은, 나아가서 이른바 유튜브 세대는, 구독과 ‘좋아요’와 후원에 목을 멜지언정 자신이 직접 나서 흉악한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으나, 박선우가 ‘해치’란 이름의 자경단으로 활동하기 전 세상에 얼굴을 알리게 된 계기인 민강훈(안보현)을 제압하는 영상과 ‘UFC 경찰’이란 별명까지, 모르긴 몰라도 본인 스스로는 꽤 자랑스러웠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렇지만 마땅히 빌런이 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캐릭터의 운명. 박선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급기야 폭주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서도철과 맞붙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테랑 2>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예컨대 가짜 뉴스에 속아 엉뚱한 사람(심지어 누명까지 씌워)을 범죄자로 몰아댄 것이나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기 직전에 싱긋 웃는 등의 모습을 보면 그냥 ‘도파민에 중독된 사이코패스 범죄자’ 같다는 인상까지 줄 정도. 하다못해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자경단원이 자경단의 역할을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예컨대 브루스 웨인처럼 눈앞에서 부모님이 모두 살해당하는 등)가 그려지기도 하는데 <베테랑 2>엔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 “선배님이 조태오 잡는 거 보고 경찰이 되었다”고? 그 대사 한 줄만으론 솔직히 부족하지.
이를 테면 관객으로 하여금 메인 빌런을 납득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범죄도시> 시리즈의 장첸이나 강해상처럼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악당’이라면 모를까, 정해인처럼 선하기 짝이 없는 마스크를 하고서 자신의 롤 모델인 선배를 패대기 치는 빌런이라니.

일단 <베테랑 2>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개인적으론 그렇게까지 크게 무리가 되진 않는다고 본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박선우는 주인공 서도철 캐릭터가 갖는 정체성(‘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경찰이자, 일개 소시민)이 1편에 이어 2편에 와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제대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박선우가 진짜 해치란 사실을 직감한 이후 서도철은 그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아들에 대한 위협도 진작 차단하고, 결국 마지막엔 조서 이야기까지 꺼내는 등 진짜 ‘베테랑’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지 않았던가!
작품 자체에 대해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액션 장면의 연출에 있어선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액션 하면 류승완’이라고나 할까? 남산타워에서의 파쿠르 액션은 진짜 끝내줬고(정의TV, 해치 대역 섭외 제대로 했네 ㅋㅋㅋ) 건물 옥상에서 벌어진 우중 격투 장면은 배우들(실제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턴트 대역 배우들도)이 정말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까지 정해인 배우가 악역으로 출연한다는 게 상상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건 사실인데, 세상 착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의외로 몸도 잘 쓰고 무지막지한 주먹질 직전에 싱긋 웃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빌런 역에 은근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하게 될 것. 개인적으론 박선우 역 정해인과 살짝 다른 스펙트럼에서, 마찬가지로 꽃미남에 속하는 임시완 배우 역시 은근히 답 안 나오는 빌런(<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비상선언> 등) 역에 그럴싸하게 잘 어울렸던 걸 생각하며 비교하게 되는 게 재미있다.
일찌감치 추석 연휴 개봉 스케줄을 잡고서, 경쟁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딱히 없기도 해서 <베테랑 2>는 진작 손익분기점도 넘고 글을 작성하는 날짜 기준으론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 흥행 질주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최근 몇 년간 큰 제작비를 들였던 <외계+인> 시리즈와 <더 문>,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등이 모두 폭망하면서 위기설까지 일었던 CJ ENM이 절치부심,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