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주의를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 많은 이들에게 디지털 게임이란 그저 ‘즐기는 사람들만 즐기며,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은’ 가벼운 취미에 불과하겠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나 문화적 측면에서나 이젠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문화 콘텐츠 장르가 되었다. 실제 국내의 게임 산업 연간 매출은 지난 2022년에 처음으로 20조 원을 돌파했고 이는 전 세계 게임 산업 매출 규모인 약 2,000억 달러(약 260조원)의 10% 수준에 달한다.

수치로만 따져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산업 분야에서, 역대급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불과 일주일 전 일어났다. 파이어워크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IE)가 유통한 게임 <콘코드(Concord)>가 출시 보름 만에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것. 해당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5 진영에서 큰 기대를 모은 대작 게임이었기에 그 놀라움의 정도는 더욱 크다. 게임 업계를 일대 충격에 빠뜨린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아타리 쇼크(1980년대 초반 컴퓨터 게임 붐을 타고 날림으로 제작된 수준 미달의 게임이 쏟아지며 공급 과잉 상태가 되었는데, 이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등을 돌려 불과 1~2년 사이 매출 규모가 거의 3% 수준으로 떨어진 사태를 말한다)’인데 그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

<콘코드>에 대해 역대급 폭망이라고 하는 건 일단 제작 기간은 8년, 제작비는 거의 3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볼륨이 큰 작품이어서 유통사인 소니 입장에서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래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속성이 지배하는 분야라서 ‘단순히 제작비 많이 들인 어떤 게임이 망했다’고 하면 그저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텐데 <콘코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콘코드>의 경우는 무엇보다 게임이 재미도 없고 유저로 하여금 플레이를 할 만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게임 곳곳에 대거 투영된 ‘PC(정치적 공정함)주의’의 짙은 그늘 때문에 소비자들이 돌아선 것이 실패의 큰 이유.

캐릭터 디자이너(보다는 그런 거지 같은 기획을 통과시킨 개발사 고위층)의 취향(?)을 의심케 만드는 그래픽도 그렇고, 캐릭터 선택에서부터 여성도 남성도 아닌 ‘논 바이너리’가 떡하니 들어가 있었다니 알 만 하다.

덧붙이면, 게임 개발 당시는 물론이고 출시 이후에도 개발사 파이어웍스 스튜디오는 수석 디자이너가 커밍아웃을 했거나 개발자들 일부가 SNS를 통해 강경한 PC주의/페미니즘을 부르짖기도 했다고. 나아가서 일부 직원은 자신의 SNS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멍청한 X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거나, 또 이를 저격하는 내부 고발이 나오는 등, 한 마디로 ‘안 되는 회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논란의 와중에 있는 PC주의

한동안 미국과 유럽 등, 주로 서구에서 생산한 대중문화 콘텐츠 작품들 다수에서 확인된 PC주의에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될 수 있는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는 필자 개인의 의견이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에선 지난 수 년간 몰아친 (주로 대중문화 분야에서의)PC주의의 광풍이 특정 기업(혹은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나 매출 증대에 결코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미국 내에서 적극적으로 PC주의를 지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상품(문화 콘텐츠 포함)을 내놓은 대표적인 두 기업이 바로 디즈니와 나이키라고 할 수 있다. 디즈니의 경우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소수 인종이나 성적 소수자임을 강조한 캐릭터를 출연시켰는데(대표적으로 <인어공주> 실사 영화가 있다) 그 결과가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은 나락으로 간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아예 “앞으로 PC주의를 우선하는 사내 문화를 고치겠다”는 선언까지 하게 되었고.

나이키는 어떨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포츠 브랜드이면서, 척 봐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플러스 사이즈 여성 모델을 적극적으로 캐스팅하며 마케팅을 펼쳤는데 디즈니와 마찬가지로 지난 몇 년간 큰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결국 ‘그녀들’ 혹은 ‘그들’은 여전히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서 스포츠 용품 구입을 위해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을 뿐이다(반면 비슷한 기간 동안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디다스, 푸마, 필라 등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주가 하락세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와 같은 최근의 상황을 보고 PC주의의 종언을 논하는 일은 다소 섣부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PC주의가 표방하는 그 이상(理想, Idea)은 분명 지금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본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PC주의 아니었으면 흑인 인어공주나 농아 슈퍼히어로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파키스탄 소녀를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었겠는가?’

영화 속 메시지의 허용 한도, 어느 수준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

그렇지만 그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피곤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콘코드> 사태를 포함하여 숱하게 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생각보다 빨리 PC주의가 막을 내리는 상황을 우리가 목도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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