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날짜 기준으로, 일주일 전 미국에선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격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저격범이 쏜 탄환은 그의 귀를 살짝 스친 정도여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게 다행이라곤 하지만, 어떻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그것도 백주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지 의아해지는 순간.
근데 곰곰이 따지고 보면, 미국에선 전직도 아니고 차기 유력 주자도 아닌, 무려 현역 대통령에 대한 저격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심지어 그 저격이 성공한(!) 경우도 있으니 뭐 그리 생소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무시무시한 아이러니.
아직까지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저격 사건의 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 그리고 미수에 그치긴 했으나 당시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 존 힝클리 등, 유명한(?) 대통령 저격범들에겐 참 희한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탐독했다는 것. 덧붙여서 대통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존 레논을 저격해서 숨지게 한 범인 마크 채프먼은 아예 총을 쏠 당시 책을 갖고 있었다고도 하고 체포 과정에서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라고 외치기까지 했다고 하니, 도대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진다.
정작 읽은 적은 없지만(^^;;) 그 제목만큼은 유명해서 세계 문학사에 남을 고전 중의 고전이란 것을 아는 이들은 많을 텐데, 적어도 제목은 유명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고전문학의 열혈 독자까진 아니라도 ‘민음사’라는 이름은 아는 이들이 많을 것. 민음사는 지난 2017년에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발매 20주년 기념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조사해서 발표했는데, 그 1위를 차지한 책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원제는 <The Catcher in the Rye>인데 여기에서 Rye가 바로 호밀이란 뜻. 제목이 뭘 뜻하는지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작가는 J.D. 샐린저인데 이 작가가 워낙 특이한 사람이긴 하다. 뉴욕에서 태어났고 집안도 먹고 살만큼 살았으며 부모가 교육열이 높아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정작 샐린저 본인은 학교 생활에 영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 작가가 글을 쓴 걸 보면 정말 공부머리가 나빴던 사람이라기보단 그냥 학교라는 단체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게 타당한 추론. 고등학교도 알려진 것만 두 번 이상 퇴학을 당했고, 군사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1년만에 자퇴.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역시 성적 불량으로 퇴학. 그의 일생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방끈’은 컬럼비아 대학인데 정식으로 입학을 한 건 아니고 그냥 문학 창작 관련한 강의만 몇 개 들으면서 습작처럼 쓴 작품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작품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열 다섯 살 먹은 고딩인데 시작부터 성적 불량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참 질펀하게도 방황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바로 그런 모습에서 작가인 샐린저의 자전적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며, 그건 누가 봐도 너무 명백하다.
1951년에 처음 출간된 이 작품은 제목만 들으면 뭔가 되게 목가적인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작품 자체는 출간 당시 다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유가 뭐냐면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미성년자인데 줄담배를 피워대고 음주도 하고 욕설도 많이 나오고 매춘, 동성애에 관한 내용까지 나오기 때문. 그래서 출간 당시 미국에선 이런 작품이 어떻게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을 수 있나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는데, 요즘엔 이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에 주목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실제 미국 각급 학교의 문학 과목 시험에 은근히 자주 출제된다고 한다).
홀든 본인은 이 사회가 온갖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봐야 고딩이라 기껏 하는 짓이라곤 음주와 흡연, 그리고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불만만 가득한 삐딱한 주인공이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여동생인 피비.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아서 나이 차이는 좀 나는 편.
피비는 정말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그런 존재이자 순수성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리고 작품 제목인 <호밀밭의 파수꾼>도 피비와의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비 왈 “오빠는 나중에 되고 싶은 게 뭐야?” 라고 물어보니,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호밀밭을 가로질러서 가다 보면 낭떠러지가 있는데 홀든은 거기서 지키고 있다가 아이들이 그 쪽으로 오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한 것.

앞서 문학사에 남을 작품이라고 했지만, 사실 독자에 따라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사람 중에 아마도 제일 유명한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 아닐까. 하루키는 실제로 이 작품을 직접 번역해서 일본에서 출간을 하기도 했는데 웃기는 건 번역 수준이 좀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고(ㅋㅋㅋ).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을 살해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들은, 홀든 콜필드로부터 모종의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이 철없는 십대 고딩이 그들 생각 속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일까?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저격 사건의 오스왈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의 존 힝클리에 대해 수십 년 전 미디어는 범인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으로부터 작든 크든 영향을 받았음을 주목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저격 사건의 범인 토머스 매튜 크룩스에 대해 서기 2024년의 미디어는 평소 자주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와 스마트폰 포렌식이 범행 동기를 어느 정도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십 년 전과 요즘의 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