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어느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서양 속담이 있다.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죽음과, 세금이다’ 다분히 시니컬한 이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모든 이들에게 죽음은 찾아오지만 때로 어떤 죽음은 특별히, 더 애처롭고 안타깝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특정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환기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시민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군인은 언제든 생사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시상황인 경우에 한해서.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헌법상 ‘한반도 북단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휴전 상태. 따라서 대한민국은 지금 (준)전시상황인 것도 사실.

그렇다는 이야기가, 어느 날 훈련병이 중대장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서 완전군장을 한 채 선착순 뺑뺑이를 돌고, 푸시업을 하다가 근육 파열과 고열로 숨져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수해로 인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이 급류에 휘말려 결국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뜻 역시 절/대/로 아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어떤 죽음

이 스무 살 갓 넘은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고 난 이후의 상황은 더 기가 막히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채 열흘도 되지 않은 훈련병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상급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군 당국이 ‘멘토’를 배정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사건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부분이 군 전역자이거나 입대 예정자인 젊은 남성 세대에서 이와 같은 공분 의식이 특히 크다.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원에 관해선… 야권의 특검 법안(정식 명칭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현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먼저 전한다.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로 넘어온 법안은 재표결에서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싸게 써먹으려고’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데려갔으면, (지금이 준전시상황이긴 하지만 어쨌든)최소한 목숨은 부지시켜야 마땅한 것 아닌가? 이 안타까운 죽음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들은 지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해병대원의 죽음에 부친 글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슬프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당장 상황을 정확히 살펴보고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보기도 지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외치는 일조차 힘겹다. 그저, 이 땅에서 태어나 남들처럼 살아가면서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해 하고, 더 많은 기쁨을 누려야 마땅했을 이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 가족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슬프다.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청춘들의 명복을 빕니다.

어떤 죽음(들)에 대하여 / 보리스 매거진 2023년 7월20일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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