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프로메테우스, 계속되는 끔찍한 형벌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추석 연휴가 막 시작될 무렵, 이제 영화관에서 완전히 내려지기 직전에 <오펜하이머>를 봤다. 개봉 전부터 볼 생각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선 아마 가장 늦게 관람하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전작들이 그런 것처럼 <오펜하이머> 또한 현재 할리우드라는 지형도에서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배트맨 프랜차이즈 정도를 제외하면, 상업적으로 참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소재와 주제를 담은 작품을 계속 내놓는데 팬들로 하여금 참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고 희한하게도(?) 흥행에서 크게 성공하기도 하는가 하면 비평 면에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를 만들어낸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가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그대로 드러낼 때 미국에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수단, 즉, ‘절대적인 대량살상무기’를 (무조건 히틀러보다 먼저)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원과 인력이 투입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바로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낙점된 이가 로버트 오펜하이머.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하면서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더욱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다소 이질적인 부분이 제법 눈에 띤다는 게 의아한 점. 우선 지나치게 친절(?)한 작품이란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작품은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데, 각각 ‘융합’과 ‘분열’이란 소제목까지 붙어서 주인공 오펜하이머와 그 주변 인물들을 조명한다. 전작 <테넷>을 두고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 팬들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을 때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실제 작품 속 캐릭터의 대사)라고 일갈(!)했던 그 감독, 맞는지? ㅋㅋㅋ

약간 갸우뚱 하게(?) 만들었던 스트로스 제독의 캐릭터 설정

그리고 작품에서 명백히 프로타고니스트이자 주인공의 안티테제로 나오는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듯해서 그 부분도 조금 의아하긴 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고 이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이게 된 시대에 오펜하이머가 ‘빨갱이’로 몰리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긴 하지만, 그 와중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트로스 제독의 다분히 개인적인 질투심 혹은 콤플렉스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

※ 다만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스트로스 제독이 오펜하이머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원자력 동위원소 수출 건(에 관한 청문회)에 관해 오펜하이머로부터 개망신을 당한 스트로스 제독이 이후 그에게 큰 반감을 갖게 된 부분이 작품에 나오긴 한다. 앞서 언급한 개인적인 감상의 근거가 된 부분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본 꼭지는 어디까지나 칼럼인 만큼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조명하고자 한다. 전술했듯이 오펜하이머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가장 첨예했던 1950년대, 빨갱이 사냥의 희생자가 된다(그렇다고 로젠버그 부부처럼 실제로 사형을 당하거나 한 건 아니고 핵무기 개발에 관한 모든 책임 있는 자리에서 내쫓긴 정도). 핵무기를 개발하긴 했지만 그 위험성을 체감하고 나선 핵무기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주장하고 심지어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했던 그의 행동이 밉보인 탓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

이를 테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국가의 반역자로 급전직하한 것이다. 그의 모습은 마치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매일매일 산 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킨다.

독립의 영웅, 홍범도 장군을 폄훼하려는 자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기에서 떠오른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 일제를 상대로 한 무장 투쟁을 이끌며 독립을 꿈꿨으나 결국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도 못 보고 눈을 감은 장군을 최고의 예우를 다해 모셔온 게 언제라고, 대한민국 육군의 엘리트 지휘관을 배출한다는 육사에선 그의 흉상을 아예 치워버리겠다며 난리다. 그 (표면상 내놓은)이유인즉, 그가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 이런 마타도어가 참으로 어이없는 넌센스인 이유는 백만 개도 넘게 댈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 넘어간 해는 1921년이다. 그리고 은근히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인데, 사실 카자흐스탄에 있던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려는 움직임을 먼저 보인 것은 북한이다. 즉, 홍범도 장군 유해의 대한민국 봉환은 남북간의 체제 경쟁도 진작에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

아무튼 그런 장군의 모습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엿보이고, 그런 상황은 참담하고도 암울하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의 경우는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면, 현대 한국의 프로메테우스의 경우는 사후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 형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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