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볼까: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 김PD의 ‘인생 게임’

지난 2020년, 미국의 연예 매거진 엠파이어에 흥미로운 기사가 한 편 올라왔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릭터 100선’이란 제목의 이 기사에서, 말 그대로 최고 중 최고로 선정한 1위 캐릭터는 다름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 이 선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고 하니, 영화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연작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2위)를 제친 데에서 알 수가 있다. 배트맨(4위), 엘렌 리플리(5위/에이리언 시리즈), 존 맥클레인(7위/다이하드 시리즈) 등 진짜 쟁쟁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모두 제친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인디아나 존스 역할을 맡았던 해리슨 포드의 또 다른 캐릭터인 한 솔로(3위/스타워즈 시리즈)까지 제쳤다는 것이다.

영화 역사상 많은 팬들로부터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캐릭터가 또 없으니,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맡는 세대교체를 상상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일 것이다. 바로 그 배우가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인디아나 존스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피날레,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이 2023년 7월 현재 개봉관에 걸려있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무튼, 정말 멋졌던 캐릭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섭섭지 않게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전세계의 수많은 인디아나 존스 캐릭터의 팬들과는 살짝 다른 방향을 조명하면서 그에 관한 추억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인디아나 존스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그 작품은, 영화가 아닌 PC게임이다.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


김PD는 아주 예전에 게임 업계에 잠시 몸을 담았던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게임 업계에서 일을 하는(혹은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을 하나 이상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름하여 인생 게임. 나에게 있어 그런 게임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러 게임을 했지만 바로 이 타이틀만큼 깊은 인상으로 남은 게임이 없다. ‘게임에서 이런 것까지 구현이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게임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디아나 존스가 동료 소피아와 함께 세계 각국을 돌면서 고대에 사라진(것으로 여겨지는)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정보를 모아 결국 지중해 어딘가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까지 찾아간다는 이야기. 물론 그 과정에서 악당 나치스와의 대결도 펼쳐진다.

게임 제작사는 루카스아츠.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당연히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회사고 또 역시 당연히 조지 루카스의 영화사인 루카스필름즈에서 나온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게임화한 타이틀들이 대표작인데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 행보는 다소 신통찮은 듯. 어쨌든 루카스아츠는 어드벤처 장르에 속하는 게임들 중에서도 현재까지도 걸작으로 평가 받는 게임들을 많이 내놓은 회사고 그 중엔 <스타워즈> 시리즈와 <원숭이섬의 비밀> 시리즈, <그림 판당고> 등의 게임들이 있다.

게임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동료 소피아와 함께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에서 다소 특이한 부분이라면, 어느 정도 진행을 한 이후부턴 일종의 분기점이 생겨서 유저가 선택한 루트로 진행을 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크게 3가지 루트가 있는데 하나는 팀 패스(Team Path)라고 해서 인디아나 존스와 소피아가 함께 진행하는 루트. 가장 많은 게이머들이 선택하는 루트였다. 다른 둘 중 하나는 위트 패스라고 해서 퍼즐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루트인데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편. 마지막 하나는 피스트 패스라고 해서 말 그대로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루트로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결국 인디아나 존스가 아틀란티스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단서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아틀란티스가 그저 고대인들의 상상이나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대륙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있었다고 하면서 아주 구체적인 위치까지 적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튼 인디아나 존스는 <플라톤의 잃어버린 대화>라는 책을 그 단서로 삼는다(참고로 이 책은 게임 내에선 존스가 강의를 하는 학교에서 찾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하게 언급할 부분은, 역사적으로 아틀란티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인물이 바로 플라톤인 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실제로 <대화록>이란 책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적 주제를 대화체 형식으로 쓴 책.

또한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언급한 책이 바로 티마이오스, 그리고 크리티아스. 이 책들은 모두 실존한 책이다. 책 내용 자체가 크리티아스하고 소크라테스가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고, 3부인 헤르모크라테스까지 기획이 되었는데 그 3부가 미완성이 된 것이다. 자, 어떤 측면에서 보면, 3부작으로 기획된 이 대화록 중 마지막 편인 헤르모크라테스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이 사실이 되게 흥미로운 일이긴 하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고 하니, 서양 사상의 정수라는 소리까지 듣는, 아주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던 플라톤이 당시 기준으론 노인이라고 할 수 있는 60세가 넘어서 다소 뜬금없이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썼다는 게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하게도,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 게임에서 존스가 아틀란티스 대륙을 찾아가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플라톤의 잃어버린 대화> 중 3권, 헤르모크라테스인 것이다. 게임의 시나리오가 굉장히 치밀하게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

루카스아츠 어드벤처 특유의 ‘SCUMM 엔진’을 기반으로 한 인터페이스

지금 게임을 해보면(스팀에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하다. 게다가 스팀판은 음성 녹음까지 되어 있는데 그 성우는 해리슨 포드는 아니다) 왜 그렇게 많은 게임 유저들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렸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옛날 PC게임(그 중에서도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 특유의 풍미가 느껴진다. 다만 옛날의 PC 이용 환경 자체가 요즘처럼 풍요로운 수준이 아니었으니 하드웨어의 한계 때문에 다소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은 인터페이스(루카스아츠 어드벤처 특유의 ‘SCUMM 엔진’을 기반으로 한)의 압박은 있다.

인디아나 존스 영화 시리즈를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존스가 세계 각국을 쏘다니면서 발굴한 유적이나 발견물들이 모두 무너지면서 흙으로 싹 덮인다든가, 직전인 4편의 경우엔 아예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등, 다소 허무하게 끝난다는 점이 그런 점이다. 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엔딩 직전 존스와 소피아는 무너지는 아틀란티스에서 천신만고 끝에 빠져 나오고 아틀란티스는 영영 바닷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독일군의 U보트에서 낙조를 바라보는 게 이 게임의 엔딩.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이런 엔딩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중산층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하는 호사가도 있긴 하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든다. 예컨대 인디아나 존스가 고고학적으로 어떤 크나큰 명예를 남길 수 있는, 정말 대단한 발굴을 했고 그 유적이나 발견물을 무사히 손에 들고 세상으로 나와 학계에 보고를 하는, 그래서 고고학계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는 일이 과연 인디아나 존스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일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인디아나 존스는 충분히 훌륭한 선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까지 주었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결말은 참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에서도 엔딩에 대해 다소 논란이 있는 모양인데,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입장을 유보할 생각이다.


정말 사랑하고 좋아했던 캐릭터,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추억을 오랜만에 되살려봤다. 게임 도중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영어사전 찾아가면서 게임을 했던 시절로부터 거의 30년도 넘게 지났으니… 그 참, 격세지감이로다. 이번 주말에 잠시 짬 내서 <인디아나 존스와 아틀란티스의 운명>을 다시 해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을 보는 게 나올까?

주말에 짬 내서 게임을 (다시)해볼까, 아니면 영화를 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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