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 아니, 그 스스로 세상을 버린 남자, 존 윅이 4년만에 돌아왔다. 바로 직전의 3편이 시리즈 전체에서 봤을 때 썩 훌륭하지 못하단 평가를 받은 점을 복기하는 한편,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이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는데, 뒤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장엄하기까지 한 액션 시퀀스까지 더해졌다. 이 시리즈와 주인공 캐릭터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다시 한번 훑어보자. 존 윅(키아누 리브스)이 작품 속의 흥미로운 세계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하이 테이블’로부터 파문(Excommunicado)의 위기에 처하고 세상 모든 킬러들의 표적이 된 것이 전작까지의 이야기. 존 윅은 아예 하이 테이블과 맞설 결심을 하고, 오랜 친구이자 콘티넨탈 프랜차이즈(?)의 오사카 지부장인 코지(사나다 히로유키)의 도움을 청한다. 그 과정에서 잠시 척을 졌다가, 동지가 되기도 하는 아키라(리나 사와야마), 케인(견자단), 노바디(샤미어 앤더슨)를 비롯하여, 최후의 숙적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 등의 캐릭터들을 만나게 된다. 아, 물론 시리즈 전통의 캐릭터인 윈스턴(이언 맥셰인), 킹(로렌스 피쉬번), 컨티넨탈의 컨시어지(랜스 레딕. 그는 이 작품 이후 사망하여 본작이 유작이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등도 모두 출연한다.
<존 윅> 시리즈가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양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 심히 멋진 총격 장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정상 (연필 한 자루로 사람을 골로 보내버리는)전설의 킬러가 총을 다루는 게 영 서툴다면 그것도 안 될 말. <존 윅> 시리즈 촬영을 위해 실제 특수부대 병사가 행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훈련을 키아누 리브스가 직접 소화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고, 이 분야의 연출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실력자인 채드 스타헬스키(알다시피 여러 영화들의 액션 장면 연출을 맡은 바 있다) 감독이 확실하게 ‘액션 뽕’을 채워준다.

<존 윅 4>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후반부 파리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을 일생일대의 명장면으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하이 테이블(엄밀히 말하면 그라몽 후작)에 의해 타깃으로 지정된 존 윅을 두고, 개선문 주변을 역주행하는 차량들 사이에서 킬러들이 펼치는 총격전은 긴박감의 끝을 보여준다. 마치 탑뷰(Top-View) 시점의 액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은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의 총격전 장면은 바로 이와 같은 장르에서 맛볼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느낌이다. 특히 엄청난 화염을 내뿜는 ‘드래곤 브레스’ 샷건은 ‘총싸움’의 로망(!)이 어떤 건지 감독이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 최후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 높디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수많은 킬러들과 존 윅 + 케인 듀오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세련되고 유려하다기보단 거칠고 처절하다. 이야말로 존 윅이란 인물이 지금까지 지내오면서(<존 윅> 시리즈는 개봉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1편부터 4편까지 8년이 걸렸지만, 작품 내의 시간으론 그 모든 일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졌다!) 겪었던 그 모든 풍파(라기보단, 어쩌면 업보처럼 보이기도 한다)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번 4편에 와서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삽입된 쿠키영상(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하긴 곤란하다. ㅠㅠ) 때문에 이후 시리즈가 또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지만 감독의 인터뷰를 빌자면 “(5편을)더 만들려면 만들 수도 있지만, 존 윅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밝히면서 결국 이 시리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이 시리즈의 스핀오프 <발레리나>가 새로 런칭할 예정이란 점이 알려지기도 했으니(참고로 <발레리나>에 키아누 리브스와 로렌스 피쉬번 등이 카메오로 출연한다고 한다).
시리즈의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은, <존 윅 4>가 액션만큼이나 이야기를 다듬는 데 있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부분 역시 전작인 3편의 실수를 만회한 부분이라고 본다). 끝도 없이 확장만 거듭할 것 같았던, 이른바 ‘세계관의 인플레이션(?)’을 일단 매조지하고 딱 적절한 타이밍에 새 캐릭터를 소개시키며 각각의 드라마를 설득력 있게 세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거의 3시간에 달하는 <존 윅 4>의 러닝타임 전부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바로 이웃한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참 어이없을 정도로 ‘와패니즘’에 경도된 감독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오사카 컨티넨탈 장면은 솔직히 좀 웃기기까지 했다. 다만 아키라 캐릭터는 제법 매력이 있었고 액션도 괜찮았다.
요약하자면 <존 윅 4>를 보고 나니 감독과 배우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기 힘든,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멋진 장면을 관객에게 선사한 모두를 위해 찬사를 보낸다. 시리즈의 팬을 위해, 어쩌면 주인공을 위해 마련된 ‘가슴이 웅장해지는’ 엔딩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