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 이토록 의미심장한 광경이라니

몸과 몸이 부딪히는 과정의 대단한 스펙터클, <피지컬 100>

성별을 불문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매우 훌륭한 미덕이라 할 만하다.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몸매를 소유(하고 지속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지선(至善)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딱히 그런 주입식 이데올로기가 아니더라도 중년의 나이에 걸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이전까지와 같은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기엔 이제 몸이 부친다는 것을.

그래서 저마다 다양한 운동을 한다. 그러면서 남 앞에서 드러내고, 뽐내고 싶어할 정도로 ‘몸을 만들게’ 되기도 한다(물론 남 앞에 드러내기 이전에,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자신 스스로가 만족스러워 할 정도로 몸을 만들게 된다. 이에 대해선 뒤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TV를 비롯한 시각 미디어가 잘 다듬어진 신체에 주목한 것이 하루 이틀 사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매사 신탁(神託, Oracle)에만 의존할 것 같았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미 엄격한 신체 단련이 최고의 미덕이었던 사실은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은 모두 레슬링으로 신체를 연마하기로 유명한 이들이었다(이 가운데 플라톤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다). 물론 이는 ‘신체와 정신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백면서생일 것만 같은 철학자들이 육중한 근육질의 소유자들이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몸과 몸이 부딪히며 파생되는 스펙터클을 집요하게 전시하는 <피지컬 100>에서 참가자들이 넘어서야 할 관문 중 몇몇이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거대한 돌덩이를 들고서 버티는 ‘아틀라스의 형벌’, 밧줄을 타고 계속 올라가는 ‘이카루스의 날개’, 100Kg 짜리 바위를 계속 굴려서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형벌’ 등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는 것.

최초 100명의 참가자들이 여러 관문을 거치며 최종 1명만 살아남게 된다

<피지컬 100>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예능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이전까지 넷플릭스에선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해외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예능 부문에선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피지컬 100> 이전에 <범인은 바로 너>, <먹보와 털보>, <코리아 넘버 원> 등이 있었다) 것이 사실. 예능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하면 자막이 많은 편이고, 한국과 해외 각국의 문화적 차이에 따라 유머 코드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반면 <피지컬 100>의 경우,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여러 참가자들의 ‘몸이 말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시 만국공통의 ‘서바이벌 예능’이란 점이 큰 흥미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바로 ‘전복’의 매력, 그것을 <피지컬 100>에선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이들일수록 자아도취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선지 중간중간 삽입되는 개인 인터뷰에선 ‘모든 상황에 대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승리를 장담한다. 그런데,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 모든 참가자가 모두 끝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하는데, 바로 그렇게 됐을 때 탈락자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갈고 다듬은 자신의 ‘몸’이 그대로 재현된 토르소를 망치로 깨부수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토록 의미심장한 광경이라니!

그리고 경쟁이 끝나면 서로 축하를 보내고 격려하는 모습이 뭉클하게 만들기도

마지막으로 <피지컬 100>이 위치한, 매우 특이한 지점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피지컬 100>은 루이웍스미디어와 MBC(‘만나면 좋은 친구’, 바로 그 MBC 맞다)가 공동으로 제작을 한 작품.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상파 채널인 MBC는 OTT 채널인 넷플릭스와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한데, MBC는 용기 있게(?) <피지컬 100>을 넷플릭스에 ‘념겼다’. 어차피 MBC 채널에서 방영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니(수많은 참가자들의 수많은 문신을 일일이 지워야 하고, 때때로 터져 나오는 참가자들의 욕설도 일일이 지워야 하고 등등) 수익이라도 내보자는 차원이란 지적도 있는데 이와 같은 시각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라고 본다.

요즘이야 KBS나 MBC 같은 지상파 채널을 보는 이들이 적어지고 영향력도 축소되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수십 년간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희로애락을 책임진 게 바로 이런 지상파 채널. 프로그램 제작 부문에 있어선 엄청난 노하우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게 바로 지상파 채널이기 때문에 앞으로 <피지컬 100>과 같은, 혹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OTT를 비롯한 뉴 미디어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거나 협업을 하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작성일 기준으로 <피지컬 100>은 에피소드 딱 한 편이 남았다. 오는 2월21일 공개되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어떤 퀘스트가 펼쳐질 것이고, 어떤 참가자가 우승을 할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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