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2022년 10월29일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9년 4월15일. 영국 셰필드에선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날엔 국내외에 팬이 정말 많은 프리미어리그 구단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두 팀 간 FA컵 준결승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경기가 열린 셰필드의 힐스버러 스타디움에는 입석과 좌석이 모두 있었는데, 이 가운데 입장료가 싼 입석은 정원이 1,600명. 문제는 이 입석 구역에 진작 정원이 가득 찼는데도 경기장 측에서 인원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계속 입장을 시키는 바람에 정원의 두 배 가까운 3,000여 명이 들어온 것. 그리고 당시 경기장엔 훌리건들의 경기장 난입을 방지하기 위한 철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이 들어차다 보니 사람들이 그 철망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 철망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넘어지고, 그 위에 또 사람들이 넘어지는 압사 사고가 발생. 경기는 중단되었고, 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97명, 부상자는 700여 명이 넘었다. 바로 이 사고가 축구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힐스버러 참사’이다.

이미 1800년대부터 축구 리그를 운영했던 영국 축구협회는 이 참사 이후 리그 운영에 있어 대대적인 개혁에 돌입했다. 우선 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모든 경기장 내에서 입석을 완전히 금지시켰고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있던 보호철망이 모두 제거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이 망라되어 1992년에 새롭게 출범한 리그가 바로 ‘프리미어리그’이고, 전세계적으로 워낙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리그인 만큼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올해로 30년밖에 안 됐다고?’라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아무튼 프리미어리그의 출범과, 운영엔 이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리버풀 홈구장에 있는 힐스버러 참사 추모비. 매년 4월15일에 추모제를 지낸다

힐스버러 참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아니, 얻어야만 하는 교훈을 이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건 발생 직후, 영국 경찰은 ‘술에 취한 팬들이 티켓도 구입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경기장에 진입하려고 한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당시 이와 같은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는 진술이나 증거도 일부 제시되었다.

그런데 사고로부터 20여 년이나 지난 2013년에 나온 진상조사 보고서는 당시 경찰의 발표가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란 점을 밝혀냈다. 이 보고서는 ‘경기장이 경기를 치르기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경찰은 진술과 증거를 조작하여 사태의 원인을 팬들에게 돌렸으며’, ‘응급구조대의 초기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 등을 밝혀낸 것. 말하자면, 당시 위급한 상황이 빚어졌는데도 경찰이 관중을 제대로 통제하거나 관리하지 못했던 부분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에 당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그리고 영국축구협회는 팬들에게 사죄를 했다. 그리고 2016년, 영국 법원은 보고서에서 조사한 내용을 포함한 17개의 조사 내용 전부가 경찰의 과실임을 인정하며 당시 경기장에 있던 팬들에겐 극히 일부의 책임만 있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당시 사고로 사망한 97명에 대한 일부 결백함이 밝혀졌다.


2022년 10월29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의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며 무려 150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다수는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란 점이 특히 더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학생이라면 대략 중간고사가 막 끝났을 무렵이고,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직장에서 새내기 소리를 들을 때. 가뜩이나 힘들고 팍팍한 삶에, 1년에 단 하루, 잠시나마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작은 일탈을 꿈꿨던 이들이, 그들의 세상이, 그렇게 졌다.

이와 같은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결국 참사가 발생하고 만 원인은 과연 무엇인지도 정확히 밝혀야 하며, 만에 하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한다.

영국도 힐스버러 참사에 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데에 20년이 넘게 걸렸다. 어쩌면 우리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처럼 무섭고 끔찍한 일이 우리 주변에서 또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고인이 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분들께도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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