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알던 모습의 대한민국이 아닐 수도 있다

<디어 헌터(1978)>, 마이클 치미노 감독, 로버트 드 니로, 크리스토퍼 월큰 주연

장면 하나.

지난 10월11일 새벽,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주택가에서 한 5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이 남성은 금방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중. 이 장면이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방법이 바로 ‘권총’을 이용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근처에서 발견된, 이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이용했던 권총은 사제 총도 아니고 정식 총번이 멀쩡하게 있는 38구경 권총. 참고로 38구경 권총은 한 종류만 있는 건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찰과 군에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총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튼 이 남성은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그저 민간인이었는데, 어떻게 권총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경찰은 해당 남성의 주변인들로부터 ‘과거 군 출신이었던 부친 소유의 권총을 갖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이번 남성의 극단적 선택 시도에 사용된 총기가 ‘바로 그’ 총기인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루시(2014)>, 뤽 베송 감독, 스칼렛 요한슨, 최민식 주연

장면 둘.

지난 9월25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체를 부검한 결과, 사인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급성 마약 중독. 그의 위장에서 ‘엑스터시’라 불리는 마약이 담긴 봉지 79개가 터진 채로 발견이 되었고, 채 포장이 터지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엑스터시 또한 130개가 발견되었다. 그 외에 이 남성의 대장에선 병원에서 수면마취제로 쓰이는 케타민(현행법상 마약)도 발견되었다.

뤽 베송 감독이 연출하고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출연한 영화 <루시>를 보면 멀쩡한 사람의 배를 갈라 마약 봉지를 숨겨 밀반입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에선 그 과정에서 마약 봉지가 뱃속에서 터져 뜻하지 않게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지만, 역시나 현실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덧붙이면, 사람의 몸에 이처럼 마약을 숨겨 국내로 밀반입하려는 시도가 전에도 있었지만 이전의 사례는 외국인이 한국을 거쳐 제3국으로 향하려다 붙잡힌 케이스고 한국인이 직접 ‘보디패커’가 되어 마약 밀반입을 시도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의 두 가지 장면을 보고서 든 생각은,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었고 알고 있던 대한민국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많은 시민들 사이의 인식은, 그래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다른 사람과 본인까지도 크게 해치는 등의 강력범죄는 대한민국에서 그렇게까지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강력범죄 발생 비율을 외국과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특정한 범죄의 요건이 나라마다 다를 수도 있고, 경제와 정치 등의 분야에서 발전 상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공 시스템을 통해 집계된 해당 통계를 100% 신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서 각국의 치안 시스템이 얼마나 성실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대략 일정 수준 이상의 치안이 보장되어 있는지, CCTV는 얼마나 보급되어 있는지, 민간인이 강력범죄에 이용되기 쉬운 총기 등의 도구 소유가 가능한지 등의 지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에 준하는 기준으로 ‘시민이 범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즉, 시민이 범죄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나라들의 리스트를 세워 보면 상위권에는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과, UAE나 카타르 같은 중동의 부국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싱가포르,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의 선진국들은 반드시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도 총기에 의한 범죄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가 없게 되지 않았나. 물론, 여전히 한국은 적어도 총기 범죄에 대해선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만큼 안전한 수준이긴 하지만 당장 이번 일만 놓고 봐도 그렇다.

게다가 마약 관련 범죄는 최근 들어 뉴스에 보도되는 절대적인 양만 봐도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엔 주로 청소년들이 향정신성의약품에 해당하는 ‘펜타닐’을 직접 유통하거나 투약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이 늘고 있다고 해서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당장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만 15세 미만 마약 사범은 85명이 검거됐는데 이 수치는 지난 2018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였다(자료 출처: 대검찰청 7월 마약류 월간동향).

이와 같은 강력범죄는 무고한 시민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계 당국의 시급하고도 강력한 대처가 요구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지인이 강력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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