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추석에 얽힌 기억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지난 수 년간 코로나 때문에 마음 놓고 만나지도 못한 가족과 친지들이 모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 없이 보내게 된 첫 추석이면서, 2022년 올해는 연휴가 예년에 비해 (대체공휴일 하루까지 포함해서)나름 긴 편이기도 해서 여러 모로 많은 이들이 풍족하게 보낼 수 있게 된 느낌이다. 다만 얼마 전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준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복구가 아직 완료된 상황이 아니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태풍의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낸다.

작년 추석 연휴를 맞이해선 ‘진정한 민족의 명절은, 추석인가 아니면 설인가!’라는 희한한(?) 주제의 칼럼을 작성한 바 있다.

한가위 vs 설날, 진정한 민족의 명절은 과연?(링크)

민족의 명절이라는 별명을 붙일 만한 쪽은 추석일까, 아니면 설일까? 궁금하신 분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시라. ^^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올해 추석에 들어서서는, 바로 그 추석에 얽힌 옛날의 기억들이 자꾸자꾸 되살아났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겠지. 아무튼 그런 옛 기억들 몇 가지를 끄집어내본다.


  • 때때옷 사 입기
인천 지하상가의 모습

추석의 전통이라면 누가 뭐래도 햇과일과 햅쌀로 정성스럽게 마련한 차례상일 것이다. 요즘이야 시대가 바뀌어서 치킨이나 피자 같은 ‘양인들의 음식’까지 차례상에 오른다곤 하지만 옛날엔 언감생심이었을 터. 그런 차례상을 마련하는 일 말고 또 다른 추석의 전통이라면 아이들이 새로 장만한 때때옷을 입고서 오랜만에 본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일도 있었다.

재롱이라는 건 뭐,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거고 ^^ 기억을 돌이켜보면 꼬꼬마 시절부터 거의 대학생 때까지는 추석을 앞두고서 엄마와 누나(들) 이렇게 동네 지하상가로 나들이를 가서 새 옷을 사는 게 옛날 옛적 추석에 얽힌 기억 중 하나다.

확실히 요즘은 예전에 비해 전체적인 규모도 줄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식 또한 조금은 떨어진 측면이 있는데 약 20~30년 전만 해도 어지간한 동네 지하상가에선 제법 퀄리티도 떨어지지 않고 가격도 착한(?) 제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청바지, 남방, 재킷 등등을 사곤 했는데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서 학교에 가면 꽤 많은 아이들이 아직 빳빳한 새 옷들을 입고 왔던 기억도 난다. ^^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 매캐한 화약 내음과 함께, 석양이 진다(?)
이렇게 ‘뽀대 나게’ 생기진 않았지만, 최대한 비슷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펌함

‘세뱃돈’이라는, 공식적인 수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설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추석에도 아이들은 오랜만에 본 집안 어른들로부터 용돈을 받곤 했다. 그렇게 받은 용돈으로 아이들은 평소엔 누리기 힘든 ‘쾌락’을 즐겼으니… 불량식품을 사먹거나, 오락실에서 탕진을 하거나, 조악한 장난감 따위를 사는 일이 많았다.

동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텐데,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달동네 끝자락의 아이들은 유독 화약총을 갖고 노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갖고 놀 괜찮은 장난감이나 유흥 거리가 부족한 시절(이런 얘기를 하니까 굉장히 옛날이란 느낌이 드는데 사실 그렇게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다. 정말이다)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왜 하필이면 화약총이었을까…? 그 이유는 아직도 궁금하다.

각설하고, 그 시절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화약총의 진가(?)는 추석 연휴에 찐하게 발휘됐다. 과장이 아니라 추석날 저녁부터 동네 이곳저곳엔 ‘콩 볶는 소리’가 들렸고, 집 대문을 열고 나가면 화약 냄새(!)가 매캐하게 풍겼을 정도. 실제 김PD도 아이들과 신나게 총질(…)을 해대고 들어오니 엄마가 ‘옷에서 화약 냄새 난다’고 핀잔을 하시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동네 문방구에선 화약총을 추석 연휴에만 팔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상황 파악을 끝낸(?) 문방구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분명 ‘대목 시즌’을 앞두고 ‘더 성능이 좋고 가격이 비싼’ 제품을 들여놓고 아이들을 유혹했으리라. 인터넷에서 검색을 좀 해보니 그 옛날의 화약총과 비슷한 물건을 현재도 구할 수 있긴 하더군.

  • 추석에 결코 빼먹을 수 없는, 꽃들의 싸움(!)
추석에 펼쳐진 훈훈한(?) 광경

그리고, 추석이면 결코 빼먹을 수 없는 민속놀이, 화투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땐가가 처음이었는데, 추석 바로 다음날 동네 근처에 사는 친구들 네 명이 한 친구네 집에 모여서(그 친구의 부모님이 마침 안 계셨다) TV를 보면서 약과랑 수정과 따위를 먹다가 한 친구의 제안으로 고스톱을 시작했다. 이 철없는 고딩들은 추석을 맞아 용돈도 제법 받은 터라 대략 반나절을 신나게 놀았다.

본격적(?)으로 추석 연휴에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부터. 이제 머리가 좀 컸다고, 판돈도 제법 올라서(다만 머리가 컸지 지갑이 두꺼워지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기껏해야 점 오백, 조금 크다고 해봐야 점 천 정도) 역시 흥미롭고 숨가쁜 추석 연휴를 보냈다. 그 때의 친구들은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이고, 그 중엔 서로 결혼을 한 커플도 있어 그 신혼집은 졸지에 하우스(…)가 되는가 하면 부부가 돌아가면서(!)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정겹게 화투를 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젠 옛날 얘기가 됐네.


흔히 추석에 하는 덕담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올해 추석만큼은, 앞서도 말했듯이 오랜만에 많은 가족과 친지들이 공식적으로 만나서 회포를 풀 수 있게 되었으니 ‘덜’은 말고, 이전의 그 어느 추석보다 더 즐겁고 풍요로운 명절 연휴를 보내시길 바란다. 모두 건강하세요!

그 어느 추석보다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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