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사는 아파트의 대문은 어떻게 생겼나요?

“그것 참 키치(Kitsch)하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예전 사람들은 유럽 각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주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유명한 그림들의 모작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당구장이나 이발관 벽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다양한 그림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키치하다, 키치스럽다는 말을 듣고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광경은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문주(門柱). ‘쓸데없이 화려하고’, ‘이게 도대체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키치함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아예 로이 리히텐슈타인(팝아트 작품 <행복한 눈물>의 작가)이나 로버트 인디애나(<LOVE> 조각 작품의 작가) 같이 귀엽기라도(?) 하면 정이라도 들 텐데, 영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로이 리히텐슈타인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로버트 인디애나

사실 요즘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되는 문제(?)는 그 쓸데없이 육중한 대문만이 아니다. 국적불명의 외국어는 또 왜 그리 많이 들이대는지. 전국 각지에 거의 고르게 분포한 ‘캐슬’과 ‘포레스트’와 ‘판테온’과 ‘엘리시움’과 ‘로얄 카운티’ 등등… 요즘은 최신 트렌드(?)에 맞게 단지 이름을 아예 변경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 아파트 단지가 오래되면 주소 찾기도 쉬워지고 편해서 좋을 텐데, 단지 이름을 굳이 변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 단지 이름에 국적불명의 외국어가 들어간 ‘최신 트렌드’가 반영되면, 놀랍게도 매매가가 일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단순 호가만 오르는 건지 아니면 실제 매매가가 오르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앞의 커다란 문주, 그리고 역시 쓸데없기론 마찬가지인 복잡한 단지 이름. 도대체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로는 아파트의 브랜드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파트도 소비자가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는 물건인데(물론 대한민국에선 선분양이란 함정이 존재하고 있지만)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기업이 자사만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브랜드란 바로 ‘가치’이다.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 추세로 흐르는 대한민국 시민의 생활에서 더 비싼, 더 고급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고, 그런 점에서 기업과 소비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바로 그 복잡한 아파트 단지 이름들, 크고 육중한 문주들이라고 하겠다.

보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아파트 문주(이미지는 기사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ㅋㅋㅋ)

어쨌든 개인적으론 참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많은 이들에겐 목숨처럼 소중한 ‘집값’이 걸린 문제니 어쩔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동시에 든다. 그렇다 해도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마저 들게 만드는 이런 문주가 곱게 보이진 않는 것도 사실. 그렇다면 아예 아파트 단지 문주를 미술품처럼 꾸미는 건 어떨까? 기업에 있어 사회 공헌 활동인 메세나 활동처럼 ‘작품에 대한 지원’ 형식으로 문주를 제작하고 설치하는 것. 그래도 예술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민을 하고 책임을 지는 아티스트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목불인견의 상황보다는 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 무더운 여름날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담백한(?) 아파트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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