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이 올해 개봉한 외국영화 중 최다 관객(6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올 12월에 <아바타> 속편이 개봉 예정이긴 하지만 그 작품의 본격적인 흥행 기록은 내년부터 시작될 테니 올해 개봉 영화 중 최다 관객 동원은 물론 최고 흥행(<탑건: 매버릭>의 경우 4DX 같은 이른바 ‘특수관’ 개봉이 많아서 평균 티켓 단가가 다른 작품에 비해 비싼 편이다) 기록까지 세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그리 대단한 통찰력이 필요하진 않다.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탑건: 매버릭>이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보리스 매거진에서도 리뷰를 했지만, 영화의 관객이 가장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극도의 흥분을 안겨준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이른바 ‘클리셰’들의 상당수가 다분히 시대에 역행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
미리 언급하지만, <탑건: 매버릭>의 그와 같은 시대착오적 클리셰들은 관객에게 거부감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환호와 성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이미 다들 알겠지만, 과거 전우의 아들이 바로 그 전우가 흥겹게 불렀던 노래를 부르자 그 모습을 쳐다보는 주인공의 눈빛에서는 말로 못할 복잡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실제 파일럿 훈련을 받았다는 배우들은 남녀가 뒤섞여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는가 하면, 전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상관의 퇴각 명령은 가볍게(?) 무시하기도 한다. 작동조차 의심스러운 구닥다리 전투기로 최신예 제트파이터를 상대하는 모습은, 리얼리티를 따지자면 코미디에 가깝지만 그래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프로도를 위해”라고 낮게 읊조리고는 백만 대군을 향해 (혼자)달려가는 아라곤…!
말하자면 (대단히 세심하게 공들여 연출된)이토록 무모한 장면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영웅 서사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 ‘살아서 행복을 누릴 것인가, 죽어서 영광을 누릴 것인가!’라고 적었고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는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라. 저녁은 지옥에서 먹을 테니’라는 말(대사)을 하기도 했다. <삼국지>에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관우와 조운 같은 장수들의 공통점이 투철한 충의 사상의 보유자들이란 점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남자의 로망’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바야흐로 태생적인 성별이나 후천적인 성적 지향에 그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두어선 안 된다는 ‘21세기적 아포리즘’에 대한 배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치적 올바름이니 뭐니 골치 아픈 가르침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일갈하는 것 자체가 로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때서? 마음에 안 들면 네가 꺼져버려! 바로 이런 이야기란 것.
공교롭게도 지난 얼마간 바로 이렇게 ‘남자의 순수한 욕망을 부채질하는’ 몇몇 콘텐츠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개되면서 많은 남초 커뮤니티 게시판들이 들끓기도 했다. <탑건: 매버릭>,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KF-21 보라매(개인적으론 ‘보라매’란 이름을 듣자마자 과거에 나름 재미있게 즐겼던 PC 게임 <레드 얼럿 2>가 생각났다. 바로 이 게임에 등장한 한국군 전용 공중 유닛의 이름이 보라매였는데, 게임 내에서 나름 준수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던 기억도 났다), 현대자동차의 첫 양산 모델 ‘포니’의 헤리티지를 계승했다는 ‘N Vision 74’… 안 그래도 이런저런 많은 일들로 스트레스 받고 피곤한 때, 잠시나마 가슴이 웅장해졌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