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새로운 형태의)가족이 된다: 브로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속하게 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원초집단(혹은 원초적 집단)의 대표적이면서 사실상 유일한 사례는 바로 가족이다. 일정한 서사가 있는 콘텐츠를 창작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요소가 바로 갈등이라고 보면,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사회가, 사람과 문화가 부딪히는 최소의 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여야 관객의 기본적인 흥미를 끌기에 용이할 것이다(최근의 대중문화 콘텐츠들 가운데 이런 부분을 가장 잘 잡아내고 있는 작품들은 의외로 마블의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들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원래 가족이 아닌데 가족의 형태를 띠고서 사실상 가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는’ 이른바 유사(類似)가족은 적당한 긴장감으로 극을 이끌어가기에 좋은 제재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영향으로 혈연의 가치를 매우 높게 치는 우리나라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해 유사가족을 등장시킨 작품들이 제법 많았고, 그 중엔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도 많았다.

돌이켜 보면,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해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큼 오래,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을 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다. 그런 감독이 한국에서, 그것도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같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에 매우 놀란 영화 팬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원치 않는 아이를 출산하고는 그 아이를 베이비 박스에 놓고 돌아선 젊은 엄마 소영(이지은). 그 아이는 시설에서 근무하는 동수(강동원)과 상현(송강호)의 손을 통해 아이 입양을 원하는 부모에게 전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돈을 챙기는 건 당연. 말하자면 상현과 동수는 ‘아이 브로커’인 셈. 이와 같은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는 두 명의 여성 경찰(배두나, 이주영)이 현행범 체포를 노리고 미행과 잠복을 이어간다. 한편, 아이를 다시 찾으러 왔다가 아이가 부적절한 경로로 새 부모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영이 상현과 동수, 그리고 아이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된다.

원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인위적이거나 과장된 연출은 찾아보기 힘들고, 로케이션 촬영은 자연광 위주로 이루어졌다. 배우들은 메이크업도 별로 안 한 듯한 모습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잔잔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따스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 평이하다. 이야기에 고저가 없고 강동원과 배두나가 맡은 배역의 캐릭터는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빈말로라도 재미있다고 하긴 힘들다’. 원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이 그렇지 않냐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혹은 개봉 해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에서 보여줬던 탄탄한 구성이나 비전이 보이질 않는다. 하다 못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선 풍경이라도 멋있었지… 아, 이 경우는 원작이 만화라서 그랬던 건가.

정말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주연 송강호 배우
아, 물론 이지은(아이유)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다

다만 이 작품, ‘브로커’를 통해 75회 칸느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의 연기는 단연, 단연 돋보인다. 얼핏 보면 이전에도 여러 차례 본 적 있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송강호는 그저 소시민 1명의 역할을 맡더라도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타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통해서. 그저 괜히 느물거리고, 괜히 주책 맞고, 괜히 썰렁한 그저 그런 아저씨 1인이 아니다. 송강호 같은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감독은 정말 엄청난 희열을 느낄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2022년, 한국영화는 참 오랜만에 기록적인 히트작(‘범죄도시 2’가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을 냈다. 그리고 본격 성수기인 여름 시즌에 개봉 대기 중인 영화들은 대부분 제작비 수백 억을 넘긴 초대형 작품들이다(최동훈 감독의 블록버스터 ‘외계+인’을 비롯, 이순신 장군이 다시 돌아온 ‘한산’, ‘관상’과 ‘더 킹’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등, 면면이 화려하다). 해외 영화들도 마찬가지. ‘토르 3: 러브 앤 썬더’와 같이 큰 규모의 작품들이 개봉 예정이다.

그런 만큼, 한 거장의 진지한 관조는 이제 금방 상영관에서 내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미있는’ 영화라곤 하기 힘들지만 충분히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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