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주: 본 글, ‘닥터 스트레인지 2: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에는 작품 관람의 흥미를 크게 해치는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다만 본 작품을 100% 이해하기 위해선 마블의 드라마 시리즈 ‘완다비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일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고심 끝에 ‘완다비전’의 내용을 부득이하게 일부 전합니다. 아직 ‘닥터 스트레인지 2: 대혼돈의 멀티버스’ 관람 전인 독자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이 활약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을 벗어나 실사 영화가 되어 관객을 만나게 되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제작자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는,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한 것. 이 부분에선 다양한 특수효과가 시도되었고 몇몇 성공적인 사례들이 노하우로 축적이 되었다. 그러면서 2022년에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특정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할지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갖지 않는다. 워낙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는데, 사실 중요한 건 비용과 시간이지 기술적 완성도는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하면 초능력을 구사하는 이 주인공들에게 갈등을 부여하고, 그럴싸한 서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 알다시피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는 갈등으로부터 비롯된다. 캐릭터와 캐릭터간의 갈등, 캐릭터와 세계와의 갈등 같은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갈등은 원래 주인공 캐릭터의 능력이 부족할 때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다. 빼빼 마른 약골인 주인공이 초인적인 의지로 신체를 단련해서 극강의 무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무협지의 이야기, 몰락한 왕족의 후손이 절치부심 끝에 대제국을 건설하는 이야기 등등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대단한 초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히어로에게 갈등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고민이 되는 이유 또한 바로 동일한 지점에 존재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러면서 갈등의 요소로 많은 코믹스 출신 슈퍼히어로들에겐 일정한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부여됐고, 각자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지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경우, 서로 적대적인 두 슈퍼히어로 그룹이 맞붙게 될 수밖에 없는(‘시빌 워’) 이유를 초능력 같은 건 전혀 없던 전직 군인(지모 왈 “사람에겐 인내심과 시간만 있으면 못할 게 없어. 나한텐 둘 다 있었고.”)이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드라마틱하게 완성되기도 했다.
그렇게 현실적이고도 진지한 톤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던 MCU에, ‘멀티버스’라는 떡밥이 투척된 것은 필연적인(타노스 말마따나 ‘inevitable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성공적으로 구축한 세계관은 물론이고, 일부 캐릭터들은 교체 아웃과 교체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실상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어떤 현상이 일어나도, 심지어 어떤 배우가 출연해도(!) 이야기가 안 될 게 없는’ 것이 멀티버스 아니던가?
MCU의 세계관은 이렇게 해서 더 오래 생명을 이어가게 됐지만, 그 반대급부로 긴장감이 현격히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시간여행도 가능하고 차원여행도 가능해진 터에, 페기 카터가 유니온잭이 그려진 코스튬과 비브라늄 방패를 입고 들고 나오지 못할 일도 없지 않은가? 아직까진 루머에 불과하지만, 톰 크루즈가 토니 스타크로 나오지 못할 건 또 뭐고?

서두가 길었다. MCU에 멀티버스 떡밥이 투척된 이후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거한 작품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라고 한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2: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 2’)는 멀티버스 떡밥의 시각적 구현에 있어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두 경우가 다른 점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시리즈의 팬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2’는 무엇보다도 감독인 샘 레이미의 독보적인 감각이 훌륭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시공간의 여러 차원을 통해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급기야 현실 세상에까지 피해가 발생하자,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완다를 찾아간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 원인을 알게 되니 그 원인은 바로…!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닥터 스트레인지 2’를 본 관객이 가장 먼저 품을 수 있는 의문은, 아마도 완다의 아이들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완다는 언제 아이들을 낳았지? 아빠는 누구고? 아, 아빠는 비전인가? 그럼 비전은 지금 어디에 있지?’ 등등. 간단히 말하자면, 완다에게 있어 아이들은 굉장히 심각한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완다에게 있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누군가로부터 해를 입는 일이 만약 발생한다면, 세상을 몇 번이고 뒤집어 엎더라도 끝까지 쫓아가 작살을 내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의 원천이기도 한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1천4백만 번의 시간여행 끝에 결국 세상을 구한 인류 최강의 마법사와 한 판 겨룰 이유가 되지.
이토록 화려한 시각효과는, 아마 샘 레이미 감독 본인도 당분간은 시도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혀 새로운 모습(?)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날 수 있으니, 샘 레이미 감독이 과거 ‘스파이더맨’은 물론이고, ‘이블데드’와 ‘다크맨’과 ‘드래그 미 투 헬’ 같은 작품을 연출했던 바로 그 감독이란 점을 되새기게 해준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한’ 비주얼이 몇 번 등장한다는 것.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보는 이에 따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혹시 아이들과 함께 관람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참고하시길.

언제부턴가 MCU의 작품들은 이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를 만땅으로 채우고 100%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시리즈까지 섭렵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제 정말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 구축에 10년을 훌쩍 넘긴 세계관인데. 하다못해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이라도 찾아서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하며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