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이 먼 데 있는 건 아니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 6편(Sid Meier’s Civilization VI)

중독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게임 시리즈,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거나 실제로 해본 적이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어떤 게임에 대해 중독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게임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고, 게임에 대한 평가로선 최고의 찬사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 게임 유저는 세계 각국에 실제 존재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인물)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 문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웃 문명과 전쟁도 벌이고, 외교력도 발휘하고, 시민들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시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게임인 만큼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선 다양한 엔딩의 조건을 마련해놓고 있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무력으로 이웃 문명 모두를 압도하고 점령하는 것. 이를 지배승리라고 한다. 그 밖에도 외계 행성에 먼저 탐사대를 보내면 승리하는 과학승리, 게임 유저가 창시한 종교를 다른 모든 문명이 따르게 되면 승리하는 종교승리 등도 존재한다.

그리고 매우 특별한 승리 조건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문화적으로 타 문명을 압도하면 승리하는, 문화승리. 게임 내의 상황을 빌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시리즈의 최신작인 6편의 경우 타 문명으로부터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면 관련 수치가 올라가서 결국 승리까지 거머쥐게 되는 것. 특히 해외에서 BTS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것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문화승리’라는 언급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한편, 이렇게 흥분된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콘텐츠가 새롭게 선을 보였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영상.

서산 / 머드맥스

부산 & 통영 / 뱃노래

대구 / 쾌지나 칭칭나네

서울 / 사랑가

순천 / 새타령

경주 & 안동 / 강강술래

강릉 & 양양 / 늴리리야

서울 / 아리랑

위 영상 가운데 특히 충남 서산 편, 이른바 ‘머드맥스’ 편은 본 칼럼 작성 현재 기준 업로드 일주일 만에 1천만 회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연합뉴스, KBS 등의 미디어에서도 뉴스로 다루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실 한국관광공사의 ‘Feel the Rhythm of KOREA’ 홍보 영상 시리즈는 이미 작년에 퓨전 국악 밴드 이날치, 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등과 함께 서울과 부산 등을 소개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바 있고 작년에도 여러 뉴스 매체에서 이를 ‘신드롬’으로까지 언급한 적이 있다.

실제 외국인으로 보이는 유저들이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코로나가 진정되면 꼭 한국을 찾고 싶다’고 한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이니 나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시드 마이어의 문명을 빌어 말하자면 ‘문화승리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도 볼 수 있을 터.

게임에서의 플레이와 우리의 실제 삶이 같을 수는 없으니 문화 분야에서 승패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고, 외부의 평가가 언제나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저 즐기면 좋겠다. 안 그래도 우울한 뉴스로 가득한 요즘 아닌가?! 할배 할매들이 조개 캐는 뻘바다가 이토록 멋지게 보이는 모습을 우리가 언제 봤던가. 아저씨들이 짐자전거 끌고 다니는 동네 골목이 세상 힙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모습을 우리가 또 언제 봤던가.

이른바 ‘문화강국’이란 것이, 먼 데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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